아론의 제주 생활 - 4.3을 앓다(4) : 순이 삼촌 - 함덕 너븐숭이 학살

in #kr7 years ago (edited)

4.3 70년, 4.3은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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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영 작가의 <순이 삼촌>은 금기시되던 4.3 사건을 문학의 힘으로 세상에 폭로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서슬 퍼렇던 1978년에 발된 중편 소설로 4.3 기간 중 북제주군 (현 제주시)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박정희 정권에서는 이 작품을 금서 조치하고 작가를 끌어다 감금하고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현재는 전자책으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며, 이 작품으로 인해 4.3 사건이 새롭게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 문제작입니다.

오늘은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조천면 북촌리를 안내합니다.

'까마귀가 죽은 귀신의 혼령이라든가 저승차사라고 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그 광택 있는 검은 날갯빛이 마을 어른들을 잡으러 오던 서청 순경들의 옷빛하고 너무 흡사햇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얕보던 까마귀들. 사람이 다가가도, 우여 우여 소리쳐도 달아날 줄 몰랐다. 그것들은 시체가 널린 보리밭을 까맣게 뒤덮고 파먹다가 심심하면 겨울 하늘로 떼 지어 날아오르며 세찬 날갯 짓으로 하늬바람 타기를 잘했다.' <순이삼촌 p.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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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육지와 서귀포에선 세찬 비바람이 몰아쳤는데 제주의 날씨는 한없이 좋았습니다.
제주 시외 버스 터미널에서 201번 동일주 버스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린 후에
북촌리 해동에서 내리면 5분 거리에 '너븐숭이' 추모관이 있습니다.
중간에 유명한 삼양 해수욕장과 함덕 해수욕장을 지나갑니다.
지난 번에 방문했던 학살터 '화북 곤을동 마을'도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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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내린 곳에서 길을 건너 조금만 걸으면 제주 4.3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간판이 보입니다.
이곳이 '너븐숭이 추모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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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어로 '너븐'은 '넓은'이란 뜻이며 '숭이'라는 건 화산 활동으로 볼록 속아오른 지형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너븐숭이'는 '솟아오른 넓은 땅'이 되겠죠. 이 지역에 추모관이 건립되어 1949년 겨울, 학살당한 500명 주민의 넋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너븐숭이 기념관은 입장료가 따로 없고, 혼자 가더라도 해설사님에게 설명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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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과 너븐숭이 인근에서 있었던 학살 사건의 전모를 설명하는 비디오를 시청할 수 있고 전시관에서 당시의 상황을 좀 더 천천히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1949년 1월 17일, 한 겨울의 이른 아침에 함덕 방면으로 이동하던 세화 주둔군 2연대 3중대 일부 병력이 숨어 있던 무장대의 습격을 받고 2명이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일로 3대대 군인들이 눈이 돌아가며 아침부터 마을 주민 전체를 모두 인근 북촌 초등학교로 집결시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오전 10시경부터 시작된 무자비한 학살은 오후 1시 이후까지 계속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북촌 초등학교에서, 또는 북촌을 중심으로 동, 서 방향으로 소개되고 끌려다니며 동네 곳곳에서 단체로 총살당합니다. 이후 작전 중지 명령을 받은 군인들은 살아남은 주민들을 해산하고 함덕으로 퇴각하면서도 지나가는 마을에서도 임의로 학살을 자행합니다. 마을은 전소되고 이 일로 사망한 주민은 500여명에 달합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잔혹한 집단 학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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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 조사를 통해 희생자로 확정된 사망자 명단입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누구의 처', '누구의 자', '누구의 모'라고 표기된 경우가 허다합니다. 올해로 70년이 된 4.3 사건이지만 아무도 이 일을 언급할 수 없는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래서 그 긴 세월 동안 잊혀진 이름을 이제 와서 정확하게 파악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했다고 합니다. 파악된 것만 이만큼인데 실제 상황은 과연 어땠을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기념관 앞에는 북촌마을 4.3 유적 지도가 있습니다. 마을 전체가 학살터였던 만큼 굉장히 광범위하게 유적지가 있습니다. 여기도 다 돌아보는데 넉넉잡고 2시간 이상을 잡아야합니다. 가장 먼 서우봉 동굴과 낸시빌레 학살터 사이의 거리가 3km가 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길은 제주 올레 도보길과 겹칩니다. 제주 올레를 걸으실 땐 아름다운 경치도 보시고, 이렇게 마을을 통과할 땐 그 마을에 얽힌 슬픈 과거에도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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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옆에는 너븐숭이 애기 무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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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놓고 간 예쁜 인형들이 있는 작은 무덤들이 모두 애기 무덤입니다. 원래 어린 아이들이 죽으면 작은 봉분을 만들어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학살 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아이들이 죽었지만, 학살의 와중에 살아 남은 어른들이 아이들까지 수습할 경황이 없어서 이곳에 그대로 방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된 다음에 아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러 왔지만 이미 자기 아이들을 알아볼 방법이 없어서 그대로 흙과 돌을 덮고 단체 무덤을 조성하면서 이런 무덤터가 되었습니다. 무덤의 크기도 아이들의 신장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덩그러니 놓인 장난감들이 더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아름다운 함덕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령비가 서 있습니다. 위령비를 지나면 제주 올레를 따라 마을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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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왼편으로 저 멀리 서우봉 동굴터가 보입니다. 서우봉 주변에는 일제가 뚫어 놓은 방공호 동굴이 있습니다. 제주 곳곳의 오름에는 일제가 뚫어노는 진지 겸 방공호 동굴이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이때도 마을 사람들이 강제 노역에 동원되었고, 나중에 이곳에서도 많은 인원이 학살되었습니다. 역사의 비극이 겹치고 겹친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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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하늘과 바다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늘 유적지를 돌아다닐 때마다 그 아름다움에 슬픈 과거가 겹쳐져서 더욱 마음이 시리고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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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푸른 함덕의 바다와 북촌 마을입니다. 비극의 그림자를 껴안고 산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예쁜 동네입니다. 이 학살 때문에 북촌 마을은 늘 1월 중순이 되면 마을 전체가 한꺼번에 제사를 지낼 수 밖에 없습니다.

왼쪽으로 보이는 섬이 다려도입니다. 북촌 학살 이후 이 마을은 남자들이 다 죽고 거의 여성들만 살아 남아서 생계가 막막했는데 다려도 덕분에 마을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려도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지만 무인도이고, 주변에 해산물이 풍성해서 그걸 채취해서 먹기도 하고 팔기도 할 수 있었다고 하고, 예전엔 미역도 많이 채취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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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등명대라고 합니다. 북촌 포구에서 등대 역할을 하던 곳입니다. 이 포구 앞에서도 총알이 빗발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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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총알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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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걸으면 한적한 북촌 포구가 나옵니다. 이곳에선 북촌 학살이 일어나기 전에 경찰관 2명이 사살된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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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정의 종착지는 낸시빌레입니다. 낸시는 제주어로 냉이, 빌레는 바위를 뜻합니다. '냉이 바위' 또는 '냉이가 많이 나는 밭' 정도겠지요. 지금은 낸시빌레 앞에 관광 호텔이 서 있습니다. 사전 정보 없이 저곳에 숙박하시는 분들은 상관 없지만 알고나면 조금은 숙연해질 수 밖에 없겠죠. 아직도 공터가 넓게 펼쳐져 있습니다. 이 낸시빌레에서는 북촌 집단 학살 한달 전 쯤, 민보단원 24명이 경찰에게 단체 사살된 곳입니다. 민보단이라고 하면 지금 말로는 '마을 청년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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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마을에는 앞서 말씀드린 '순이삼촌' 문학비와 또다른 학살터인 당팟도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오늘 사진으로 소개하지 않은 곳도 직접 돌아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제주 4.3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모두가 기억하는 역사가 되길 바랍니다.


아론의 제주 생활 - 4.3을 앓다(3) : 관덕정, 곤을동 마을
아론의 제주 생활 - 4.3을 앓다(2) : 지슬 마을, 안덕 동광
아론의 제주 생활 - 4.3을 앓다(1) : 성산포 추모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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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과 더불어,, 국가가 절대 해서는 안될 짓거리를 했죠... 국민 학살이라니요. 앞으로 절대/결코 이러한 일이 벌어져서는 안되겠죠 ㅠ

선악의 공방 사이에서 악을 택한 인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역사에 무수히 많고 또 반복되고 있죠. 그중에서도 제주 4.3은 유례를 찾기 힘든 잔혹 행위였습니다...

불편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역사죠...
애기무덤을 보니 더더욱 가슴이 아프네요. T^T

제주살이 시작하며 처음이네요 무심했던 제가 반성하게 되는.. 소중한 글 감사합니다!!

기왕이면 차분히 직접 돌아보시길 권합니다. 감사합니다.

과거 학살등은 혼란한시기에 사람이 얼마나 악마가될수있는지 보여주는것같아요.
아일랜드만화를 통해 43사건을 얼핏보고 그때 자세히 찾아봤는데 정말 끔찍 했던 기억이...그래서 이시기에 살아가는것도 복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하고있어요 ㅎ

그런 지옥이 무려 7년간 계속되었다고 하니 이 섬에서 살아남은 어르신들은 그 후로도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이런 좋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게 정말 복이죠.

살아있는게 고통이셨을것 같아요..ㄷㄷㄷ

모셔갔습니다. 감사합니다.자주 뵐께여^^

네.. 자주 뵈어요. 감사합니다. ^^

리스팀 합니다.

감사합니다. ^^

무거운 주제군요
그나마 지금이라도 많이 알려져서 다행인 사건이에요

이제 겨우 4번째 장소 방문인데... 아직도 엄청나게 많은 곳이 남았다는요.. ㅠㅠ

눈앞이 캄캄해진다는 말
지금까지는 그런 말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 정전이 되고
눈앞에 캄캄해집니다.

경찰이든 군인이든 다 제주 사람들 아니었습니까
한 집 건너 두 집 건너 사돈이 되고 외가가 되고
그렇게 얽혀 살던 이웃이 죽고 죽이는 비극
어떻게 설명을 하겠습니까

리스팀합니다.

그 학살을 자행한 무장대와 토벌대는 대부분 육지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경찰 토벌대와 서북 청년단은 이승만이 고의로 내려보낸 거였죠. 제가 몇 군데 방문하면서 써놓기도 했는데 그냥 고기잡고 농사지으며 살던 이 섬의 순박한 주민들은 아무 이유 없이 대부분 끌려나가 죽고, 산으로 숨고, 그러다 발각되어 또 죽은 거죠. 이들끼리 서로 죽인 게 아니고요... 리스팀 감사합니다.

요즘 운전하면서 팟캐스트 그것이 알기 싫다.에서 4.3 사건 편을 듣고 있어요. 서른 넘게 전혀 모르고 살았다는게 부끄럽고 무섭기도 하고 그래요. 마지막 말씀처럼 모두가 기억하고 애도하는 역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처음 이 사건을 접하면 무장대와 토벌대를 구분하는 것도 어렵죠. 정말 복잡하게 전개된 사건이고 무려 7년이나 계속 된 일이기도 하고요. 어떤 경로로든 관심 가져 주셔서 고맙고 저도 더 열심히 돌아다니며 취재하고 포스팅할게요. ^^

짱짱맨 호출에 출동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