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떡볶이 집에서

in #kr7 years ago (edited)

제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입니다.
제 단골 떡볶이 집은 기찻길 옆에 있는 포장마차였습니다.
낮에는 분식을 팔고 밤에는 분식을 안주로 술도 파는 곳이었어요.
하루는 학원 가는 길에 떡볶이를 먹는데 눈가에 퍼렇게 멍 든 아주머니가 순대를 잡수고 있었어요.
아주머니가 가고서 포장마차 아주머니가 해주신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아줌마 참~ 초딩한테 이런 게 인생이라고~
시집 잘 가야 한다고 신신당부 했는데 아직도 못가고 있네요 ㅎㅎ

이 이야기도 선배들과 했던 소모임에서 썼던 이야기입니다.
제가 감당하기에는 좀 무거운 소재여서 결말이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결말이 참 맘에 안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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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떡볶이냐?”
“네.”
“내가 여기서 장사하면서 너처럼 매일 떡볶이 먹는 년은 처음이다. 안 지겹냐?”
“아저씨 떡볶이가 맛있잖아요.”
“웃기네. 계란 서비스다.”
“아저씨처럼 매일 서비스 주면서 매일 생색내는 주인도 없을 거예요.”
“반만 먹어. 반은 포장 해줄게.”
“네.”

배시시 웃는 여자의 눈가에 퍼런 멍이 보인다.

“왜 또 맞았냐?”
여자는 말이 없다.
“빌어먹을 새끼가 쌀 팔아 먹을 돈도 안 줘서 마누라 매일 떡볶이를 먹이면서 그렇게 패기까지 해?”
“아니에요. 내 잘못이에요. 이런 사람 좋다고 따라다닌 제 잘못이에요.”
“너는 나중에 뒈지면 성불할거다.”
“지금부터 이마에 점 하나 찍고 다닐까요? 미륵불이라고?”
“미친년아 부처님 노하실라. 떡볶이나 쳐 먹어.”
“네.”
“야. 보살댁!”
“네?”
“너 나이가 몇이냐?”
“마흔 넷이요.”
“너 지금이라도 딴 놈 소개시켜줄까?”
“칼부림 나요.”
“그렇게 맞으면서 죽는 게 무섭냐?”
“그럼요. 맞아도 사는 게 좋죠.”

여자가 쓰게 웃었다. 결혼하고 십칠 년. 아직 애가 없다고 한다. 사실은 임신이 몇 번 됐었는데 남편 손찌검에 매번 잘못됐다고. 남편은 그 일을 핑계로 때리고 또 때렸다고 하니 가엾기도 하다.

“소주 한 잔 할래?”
“술 못 팔잖아요?”
“아니 어차피 기찻길 옆 오막살이 고쳐서 하는 노점상, 술을 파나 안파나 단속 뜨면 도망가야 하는 거 똑같아.”
“술 못 마셔요.”
“한 잔만 마셔. 나도 이거 한 병 먹고 오늘은 들어가야지 싶다.”
“네.”

여자 앞에 소주잔 하나가 놓였다. 쪼르르 떨어지는 소주를 보며 여자가 한숨을 푹 쉰다.

“아저씨. 우리 신랑은 왜 이렇게 맑은 걸 먹고 그렇게 사람이 이상해질까요?”
“알콜 중독자 새끼 속을 내가 어떻게 아니? 술이 알지.”

여자, 단번에 소주를 들이킨다.

“크흐.”
“가지가지 한다.”
“아저씨. 아저씨 이야기나 해요. 내 이야기 이제 재미도 없고. 지긋지긋하네. 두들겨 맞기나 하고.”
“나? 나 인생 편하게 살았어. 별거 없어.”
“별거 없는 양반이 여기서 노점상 하면서 사나.”
“노점상이 어때서 이년아. 난 세금도 안 내. 쏠쏠해.”
“자식은 있어요?”
“스물 다섯, 스물 아홉. 큰 놈이 딸이야.”
“딸은 뭐해요?”
“시집 갔어.”
“사위는 착해요?”
“아무렴 네 서방보다는 착하지.”
“무슨 일해요?”
“딸은 여상 나와서 간호사 한다. 사위는 우체국 다니고.”
“사위 잘 얻었네.”
“아들은 이놈이 공부를 잘 했어. 대학교 다녀. 군대 제대하고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는데 돈이 있어야지. 워킹 홀리데인가 뭐시기. 혼자 벌어서 갔어. 호주에 있어”
“아저씨는 이제 아들만 졸업 시켜서 장가 보내면 되겠네요.”
“보살댁 너는 어떻게 할래?”
“...”
“계속 그렇게 살거야? 내가 이런 말 하면서도 참 못쓰겠다 싶지만 너 애도 없어. 도망가.”
“...”
“내가 한 백만 원 빌려줄게 가. 죽은 우리 집사람 고향이 조금 외진 데 있어. 젊은 사람 없어서 가면 밥은 안 굶어”
“아저씨 내가 일 년을 매일 거르지 않고 여기서 떡볶이 먹어도 백만 원 안돼요. 그러지 마요.”
“돈이 문제가 아니라 미운 정 들어서 그래, 이 밥통 같은 년아. 내가 너랑 같이 살자고 하냐?”
“...”

그 때였다. 젊은 여자가 들어왔다. 편한 복장에 선글라스가 어울리지 않는다.

“아빠.”
“어? 혜미 너 어쩐 일이냐? 정서방은?”
“아빠, 나. 흑흑”

우는 딸을 보고 주인 남자 눈이 커졌다.

“혜미야, 너 무슨 일이야. 아빠한테 다 말해봐.”
“아빠, 정서방이, 정서방이...”

딸,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선글라스를 벗는다. 눈가가 시퍼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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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슬프네요 맞으면서도 도망가지 못하고.. ㅠㅠ폭력은절대안되죠~!!! 끝이............. 마음에 안들긴하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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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그 아주머니는 애들이 있어서 떠나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이 이야기의 끝을 어떻게 해피엔딩으로 바꿔보려 했는데...
제가 소모임에서 취미로 쓰는 글과 필력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소재였어요 ㅜㅠ
차라리 아저씨랑 같이 살기로 하고서 떠나는 이야기로 바꿔 볼까? 싶기도 했고요...

아...
할 말이 안 떠올라요. 아저씨도 불쌍하고
맞고 사는 여자도, 맞고 아빠 찾아 온 딸도 불쌍해요.
그래도 마음으로라도 보살펴 주는 이가 있어서
다행인 것 같네요.

그때 제 옆에서 순대를 잡수던 아주머니는 지금 60이 넘었을텐데~
잘 살고 계시기만을 바라죠 ㅜㅠ

포장마차 아주머니는 많이 주는 것 밖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분이었어요......

이 이야기 70프로는 지어낸 것이니까~
너무 맘 아파 하지 마세요~
주인공의 모델이 된 아주머니도 이젠 행복하실거라고 ㅜㅠ 믿어요 ㅜㅠ

아, 픽션이 많다는 데서 마음이 놓이네요..^^

제가 쓰는 글이 허구의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수필처럼 쓰나 봐요~
앞으론 제목 앞에 [단편]이라고 적어야 겠어요~
사실 이거 정말 조악한 글이라 부끄러워서 안 적었는데;;
제 글을 보고 실제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ㅋㅋㅋㅋㅋ 재미있네요

ㅋㅋㅋㅋ 항상 꿈과 희망을 주는 댓글 감사합니다!

하... 보는데 먹먹해지네요...
실제로 아이들때문에 어떻게 못하셨다는 댓글을 보니 더 먹먹해집니다 ㅠㅠㅠ

20년 전도 더 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는 맞고도 사는 분이 조금 흔했던 것 같아요. (90년대 후반이요)
열다섯 살이 많은 우리 오빠도 제가 중학생 땐가~ 친구들에게서 첫사랑이었던 여자분이 시집 잘못 가서 남편에게 맞고 산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속상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때리지 않는다는게 칭찬이 될 정도였으니까요.. 당연한건데 ㅠㅠ 잘 읽었습니다.

아.... 때리지 않는 게 칭찬이 될 정도.... 씁쓸하네요...

반갑습니다.

맞으면서 사는 여자가 요즘도 많으려나요~
정말 화가 나네요~
해피앤딩 기대해요~

어릴 때 한 번 본 아주머니인데
지금도 얼굴과 머리모양, 표정이 기억나요...
지금은 행복하시길 ㅜㅠ

3월의 시작을 아름답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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