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의 근원

in #kr7 years ago (edited)

두려움의 근원이 무엇인지 가끔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정하려면 그의 두려움을 건드려야 한다.

역으로 타인이 나를 마음대로 조정하려면 그가 나의 두려움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인간은 인정을 하든 안 하든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인지라 타인에 대해 배척 당하는 두려움이 큰 것 같다.

우리가 웃기 싫어도 올라가지 않는 떨리는 입꼬리를 잡아 당기고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아도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 바로 배척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둘째 임신 후 시어머니께서 첫째 아이를 일년동안 봐주셨는데 아이를 본인이 원하는대로 변화시키기 위해 가장 자주 쓰시는 방법이

“너 그러면 할머니 너 싫어할거야.” “너 이러면 누가 너를 좋아하겠니?” 하시며 배척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심어주시는 것이다.

끊임없이 이러한 가치관을 주입당한 아이는 점점 배척 당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되고 마침내 무리(강자)가 원하는 방식대로 자신을 맞춰 나간다. 그래야 배척 당하지 않으니까. 그래야 두려운 일을 당하지 않을테니까.

배척 당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테지만 원하든 원치않든 조금 달라보이는 사람들을 향해 무리의 배척은 자행되고 희생양들은 언제나 생기기 마련이다.

내가 희생양이 되었던 것은 안타깝고 다시 돌아간다면 희생양이 되지 않고 싶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그래도 그 경험을 통해 얻은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고통, 외로움을 겪지 않아본 사람들을 그것을 영원히 겪지 않기 위해(사람들이 그것은 호환마마처럼 너무 무서운 거라고 했으니까)계속해서 자신을 억누르며 무리에 억지로 자신을 껴맞추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더 커지지만 점점 더 심한, 너무나 괴로운 마음의 고통의 경지까지 가본 사람은 이상하게도 이제 그 두려움에 대해 좋게 말하면 초월하는 태도, 나쁘게 말하면 포기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

그래서 결국 여러 영적 지도자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방법으로 언급하는 “내려놓음”의 경지를 원하든 원치않든 겪게 된다.

내려놓지 않으면, 초월하지 않으면 너무나 괴롭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그토록 놓지 않았던, 두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 해왔던 자아에 대한 집착, 타인에 대한 기대 등을 어쩔 수 없이 놓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적어진다.

나는 이미 겪어봤기에, 약간은 ‘그것보다 더 하겠어’ 하는 똥배짱, 담력이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것이다. 이것은 극심한 마음의 고통을 겪어본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생존의 본능이 있기에 자신이 정말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겪으면 그때 그 고통에서 나를 구해주기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게”된다. 그럼으로써 그토록 무서운줄 알았던(무서운거라고 주입 되었던) 두려움이 사실은 구름처럼 잡히지 않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강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타인을 조정하기 위해 그들의 두려움을 이용한다. 그래서 결국은 말 잘 듣는 사회를 만든다. 그래야 본인이 편하니까.

마라톤을 하다보면 처음엔 죽을 것 같다가 나중엔 그 고통의 단계를 어떻게서든 넘어서면 ‘러닝하이 Running High’라는 환희의 단계가 찾아온다고 하는데 고통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살짝 살짝 고통을 맛본 사람은 그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져서 앞으로는 그 두려움을 겪지 않기 위해 더 말을 잘 듣게 되지만 끝까지 가본 사람은 결국은 내려놓음의 말도 안되는 체념하는 듯한 편안함의 경지에 다다른다.

이게 좋은 상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고통을 겪지 않아본 사람보다는 고통에 면역력이 생겨 두려움이 덜 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안돼봤자 그 정도겠지” “죽을 것 같지만 죽지는 않더라.” 이런 어떻게 보면 조금은 어이없는(?) 쿨한 태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고통스러운 사람들, 왜 나에게만 이러냐고 하늘을 맘껏 원망해도 좋지만(사실 세상은 불공평하기에 우리는 원망할 자격이 충분하다. 모두가 자신이 만든 결과라고들 말하지만 첫출발점이 달랐던건 사실이니까)

그러는 동시에 이 고통 끝에도 나에게 주어지는 선물은 있다는 것을 단단히 마음 속에 새겨뒀으면 좋겠다.

우리는 두려움을 겪었음으로 이제 덜 두렵다. 우리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세상이 우리에게 그러한 겪지 않아도 됐을 고통의 경험을 준 것은 어쩌면 우릴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다.

첫출발점이 비록 서글펐더라도 최후에는 그들이 아닌 내가 웃을 거라는 것을 굳게 믿고 그 아픔을 발판 삼아 더 강해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고통만이 인간을 성숙시킨다>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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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또 소리소문 없이 글을 쓰고 가셨나요. 메가님 글을 발견할 때마다 마치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준 것 같습니다. (박메가냐 오메가냐..) 박씨를 기다리는 저는 흥부일까요... (누군가 리자님께 흥부자라고 했더니 흥부..자라서 아이들이 많다고 했던가요)

약을 팔려면 병부터 팔고, 물건을 팔려면 두려움을 팔라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대표적으로 냄새가 나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판 뒤, 페브리즈를 파는 것이지요. 메가님 말씀처럼 훈육이나 정치에 있어, 통제를 위하여 두려움을 심어주기도 하고요.

그 중에서도 상상 속에서 키워낸 두려움이 가장 강하고, 선인장 가시처럼 조금 맛본 무서움이 다음으로 큰 것 같습니다. 과거 신해철이 선인장에 찔리면 아프지만 그것을 오히려 꽉 쥐으면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이미 나를 통과한 두려움은... 다시 만날지언정, 바다에 내리는 비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끝까지 가본 자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런지..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음으로써 우리는 제 3의 눈을 얻는다고도 생각합니다. 고통을 알지 못했다면 영원히 보지 못했을 아름다움, 행복, 감사, 그리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눈이요. 두 눈으로도 사는 것에 지장이 없고 오히려 속은 더 편할 지도 모르지만.. 고통이 낳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삶은 그 선명함부터가 다르지요.. (스프링필드 출산 설..)

그래도 여전히 두려워요. 저를 겁주는 것이 상상 속의 괴물인지 선인장의 가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는, 용기있는 삶을 살려고 더 유난을 떠는 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주저함이 생길 때마다 묻습니다. (갑자기 나레이션..) '나에게 두려움이 없다면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 마지막 저 문장을 쓰고 집중도가 부쩍 떨어지네요. 갑자기 찬송을 불러야할 거 같기도 하고.. 성숙한 와인같은 털알이가 됩시다. 사람 취하게 만드는 ㅊ ㅣ명적인 ㅁ ㅐ력의 ㄴ ㅓ와 ㄴ 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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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낳은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삶은 그 선명함부터가 다르지요..>

정말 명댓글.........!

<ㅊ ㅣ명적인 ㅁ ㅐ력의 ㄴ ㅓ와 ㄴ ㅏ...>

여기에 ㄴ ㅏ는 왜 붙인건지... 당신의 자신감을 사랑합니다..!!!

돌아오실줄 알았습니다. 메가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거든요.

“너 그러면 할머니 너 싫어할거야.” “너 이러면 누가 너를 좋아하겠니?”

중국 할머니도 저런 협박을 하시는군요? 우리 엄마만 하는 줄 알았습니다. ㅋㅋㅋ 사실 저도 합니다. 엄마가 저렇게 말하는거 무진장 싫어하는데... 어느 순간 저도 애들한테 저러고 있더라구요. 학습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내가 싫어하고 있으나 나도 모르게 하고 있는....

내려놓음

한때 엄청 내려놓을려고 애를 썼죠.. 어떤 선교사님이 쓴 내려놓음이란 책을 1,2를 읽고 감동 받아서... 근데.. 내려놓으려고 애쓰니 더 안되더라구요. 걍 살다보니 적당히 내려놓게 되더라구요. 돈을 내려 놓고.... 신랑을 내려놓고... 애들을 내려놓고... 뭐 다 내려놓고... 하지만 조금씩은 다 쥐고 있습니다. 완전히 내려놓진 못하겠더라구요.
가끔(아니 자주) 정신을 완전히 내려 놓고 아이들한테 소리지르거나 같이 춤을 추거나 합니다.

고통을 겪지 않아본 사람보다는 고통에 면역력이 생겨 두려움이 덜 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안돼봤자 그 정도겠지” “죽을 것 같지만 죽지는 않더라.” 이런 어떻게 보면 조금은 어이없는(?) 쿨한 태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저도 종종 죽을것 같지?? 안죽어... 걍 힘들뿐이야.. 라고 말하곤 했죠. 존버는 승리합니다. (뭐라는지...)
하지만 고통을 겪어보면 아무래도 역치가 높아지는건 사실인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할때 두려운 맘이 생겨도... 다섯번이나 배도 째고 살아남았는데 뭘 못하리... 라고 생각하면 조금 두려운 맘이 누그러들더라구요.

<고통만이 인간을 성숙시킨다>

성숙안하면 안될까요? 흠....

성숙 안하고 살 수 있다면 그게 최곤거 같습니다 ㅎㅎ

고통받지 않는 삶이 되는건가요?

근데 또 성숙하지 않는 삶 또한 별 매력은 없네요. 나일 똥꾸멍으로 먹고 싶진 않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삶이 우릴 매력 없게 두질 않죠~~ㅜㅜ

그래서 우린 매력덩어리들이군요. ^^;;;;

오늘도 더 매력적인 날 위하여.. 집안일을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겠습니다.

매력적인 날을 만들어주는 필수 요건 집안일 ㅋㅋ

하기 싫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마음에 평정을 찾고 아점을 먹고 있습니다.(세탁기 하나 돌림.)
이 고통을 감내하면 오늘 저녁에 전 울 신랑에게 아주 매력적인 여자가 되어있겠죠? (갑자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짐... )

그러고 보니 메가님은 더 좋은 집안일을 하다 오셔서 그런지 더 매력적이십니다.

<하기 싫어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마음에 평정을 찾고 아점을 먹고 있습니다.(세탁기 하나 돌림.)>

아... 내가 쓴건줄...

저도 고통에 몸무림치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세탁기 버튼을..

나일 똥꾸멍으로 ㅋㅋㅋㅋ 아... 대구가서 방구소리 들어야했는데!!!

난.... 아직.... 나일... 똥꾸멍으로 먹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왜.... 내 방구 소릴..... 들으려고 하는건가요??
지금 나 욕하는거?? ㅋ

리자님 남편님의 용감한 방구와 1호의 리액션을 제 두 눈으로 봤어야... +ㅁ+

아... 혼자 찔려서... ㅋㅋㅋ 방구낀 놈이 썽낸다고... ㅋㅋㅋ

저희 신랑은 남들 앞에선 일코합니다. 하지만 일호가 다 폭로하지요.. ㅋㅋㅋ

정말 고통을 겪어본사람만이 얻는 것은 분명히 있더라고요. 그치만 뭐든지 적당해야하듯 인생에 굴곡은 있으돼 ,너무 많이 아프지 않은게 좋은 것 같아요.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하기도 하고요. 어느정도 삶을 조절하면서 살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마음대로 안되는 때가 많지만요ㅎㅎ

고통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얻는게 분명 있지만 그건 어쩔수 없이 받는 고통에 대해 좋게 보려는 관점이고 그 얻는 것 만만치 않게 잃는것도 분명 있어요 ..><

고통을 미화시키는 것은 안 좋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미 받은 고통에서 억지로라도 교훈을 찾아내 상처를 보석으로 탈바꿈 시키려는 노력은 정신건강을 위해 좋은 것 같습니다 ㅎㅎ

마음대로 안되지만 삶을 조절하려는 노력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각자 연약한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두렵게 하고 두려워하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실험용 쥐를 이용한 실험 중에서 고통을 가하는 실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더라도, 고통이 계속 반복되다보면, 결국 가만히 있는다고 하더군요. 어떠한 수를 쓰더라도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기에,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라 해석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를 체념이라 이름을 붙일지, 해탈이나 이름을 붙일지 참 어렵습니다.

만약 고통과 두려움을 통해,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결국 그 누군가는 매번 움직임을 시도하다가 이내 멈추어버리고 말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사실 고통과 두려움의 끝 - 이른바 경계를 아는 사람들은, 이미 그만큼의 양을 가늠할 수 있기에, 딱 그만큼에 버틸 수 있도록 적응을 하게 되었는지도요.

요즘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생사를 오가는 일이 아닌 한, 두려움과 고통은 결국 실체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좀 더 성인의 경지에 이른다면, 생사가 오가는 일에 대해서도 실체가 없다고 느낄 수 있겠습니다만, 그 정도 수준에 이르기에는 아마 저 스스로는 부족함이 많겠지요. 일상 생활에서 (상대방이) 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가, 내 삶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는가 생각을 해보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거든요. 어쩌면 두려움의 그물을 통해 우리를 속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니, 그 두려움과 고통은 어쩌면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적응과 조절이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가끔 꿈꿉니다.
'당신이 주는 고통과 두려움을 거부한다. 그 것은 나의 삶과 죽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기 때문에.' 라고 말하는 것을요.

<두려움과 고통은 어쩌면 스스로를 성장시키기 위해 적응과 조절이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이를 체념이라 이름을 붙일지, 해탈이나 이름을 붙일지 참 어렵습니다.

저는 이 문장에서 빛을 보았네요. 난데 없으시겠지만 감사합니다.

와~~~~~~~~드디어 메가님 포스팅이올라왔네요....
저의 마음공부 1위 메가스포어님~
앞으로도 자주올려주세요!
그리고 힘들었던 메가님 과거가 성숙이라는 꽃을 피운것같아요

고통만이 인간을 성숙시킨다

정말 고통만이 인간을 성숙시킬 수 있을까요...
사랑이나 배려로는 안되는 걸까요....

저는 자신감이 없는 약한 아이었기 때문에... 학창시절...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 남자 아이들의 타킷이 많이 됐습니다...
발을 걸어 넘어뜨리거나... 머리를 잡아당기는 일이 다반사였죠...
그래서... 전 학교가기가 두려웠습니다... 꾀병을 부려서라도.. 안가려 했죠...
하지만... 엄마는 등교하는 일만큼은 엄격하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는 가야했어요...

전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고통스럽습니다...
당하기만 했던 제 모습이.. 너무 창피하고 바보같아서.. 차라리 그 시절 기억이 없어으면 할 정도로요...
이 정도 고통은... 극한의 고통이 아니기에... 저는 성숙함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전 고통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메가님 글이 피드에 떠서 반가웠는데... 글을 읽고 나니... 슬퍼지네요...
오늘은 이래저래 일도 잘 안풀리고... 우울한 날이어서... 더 예민해지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고통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게 좋은거 같습니다..ㅜㅜ 저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고통을 받았기에 좋게 생각하려 하지만 고통을 미화시키는건 좋지 않은거 같아요.. 고통보다는 사랑이나 배려를 받으며 사는게 백만배 좋습니다.. 저도 선택할 수 있다면 고통 없이 사랑 받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하지만 첫출발점이 모두 다 다르니... 억울하단 생각도 안해본건 아닌데 얻은 것도 없지 않아 있어요.. 저는 언제나 현재가 과거보다 좋아요... 과거가 그닥 좋지 않으니 과거를 그리워해본적은 별로 없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예민이라면 저도 일인자라 ㅎㅎㅎ 예민한 사람끼리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푸는거죠 뭐 ㅎㅎ

저도 과거보단 현재가 훨씬 좋답니다... 천성이야 바꿀 수 없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서.... 다른 사람 앞에서 재밌는 농담도 하고... 예전엔 짝사랑하던 사람에게 고백도 했었는걸요ㅎㅎㅎ 물론 거절당했지만요ㅎㅎㅎ
어제보단 오늘이... 오늘보단 내일이... 더 행복한 날일거라 믿으며 살고 싶습니다...

메가님은 예민이라기 보단 감성이 풍부하신거죠...
그 감성의 숲에서... 제가 남들에게 못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요정같은 분이세요^^

저는 과거가 가장 불행했고 그럼으로써 현재가 과거보다 항상 좋은걸 계속 느끼면서 이제는 미래가 지금보다 더 좋을 거라는 확신 같은게 들어요..

언제나 지금이 과거보다 좋았거든요.. 또 과거가 될 오늘보다 현재가 될 미래가 좋을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 때문에 미래가 아주 두렵지는 않은거 같습니다..

저도 내성적인데 나름 노력으로 농담도 많이 하고 부끄럽지만 사랑 표현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자신의 틀에서만 살기 보다는 틀에서 좀 벗어나보는 경험이 나를 더 기분 좋게 조금 더 즐거운 인생을 살게 만들어주는거 같아요..이제는 여자 노홍철이 되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다 내려놓고 다 비워내고 싶어요.. 어차피 이번 생 요런 식으로 이 나이때까지 살았는데 망했어...란 생각으로 무언갈 막 집착하거나 어떤 것을 막 두려워하거나 그런 것에서 제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어렵고 안되지만 그 방향으로 가려고 계속 제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요...

내일 당장 내가 사고로 죽더라도 나 최소한 그래도 행복하게 살려고 나로 살려고 노력은 했지.. 라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어요..

남보단 언제나 내가 우선입니다.. 나를 아끼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당장 내가 사고로 죽더라도 나 최소한 그래도 행복하게 살려고 나로 살려고 노력은 했지.. 라고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싶어요...

순간... 머리가 멍해지네요... 나에게 내일이 없을 수도 있는데... 항상... 내일부터 달라질거야... 라고 미루던 제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그리고... 언니 몫까지 행복하게 살다 가야... 웃으며 언니를 만날 수 있는데... 또 잊고 살고 있었어요ㅠㅠ
오늘 하루 우울해 하던 것도... 배부른 투정이라 느껴지는 밤입니다...
메가님... 메가님을 알게 되어서... 너무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메가님의 말씀에... 또 용기 한아름 안고 갑니다...

아아... 아이 둘 딸린 여자 노홍철인가요... 너무 치명적인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보는 글이 너무도 반가우면서, 마치 나를 말하는거 같아 오히려 ‘두려워지는’ 글입니다. 영어로 말하면 ‘self conscious’ .. 저는 좀 많이 타인을 의식하는 편입니다. 필리핀 한인사회가 좁아서 그렇기도 한데, 내가 타인에게 보여지는 그 그릇의 한계에 개탄하는 사건들이 많아서이기도 했지요. 시어머니의 양육법은 힘듭니다. 저 역시 아이들에게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강조하는 편이지요. 하지만 저는 그런 모습들은 당연히 필요한, 아이들이 살면서 겪어야 할 모든 경우의 수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양육법이라는 생각을 해요. 더불어 살기 위해서는, 내가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은 정말 중요하니까요. ‘고통만이 인간을 성숙 시킨다...’ 니체의 말이 찔리지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고통은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안고 살아가는 ‘행복’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메가님 글 오랜만에 읽어 너무 반가워용^^

니체의 말이 어디서부터 인것인지요?
위의 내용들이 너무도 현실을 잘 얘기해서... 어디서부터 니체인지~ 어디서부터 메가님 글인지~ 구분이 잘 안되는군요..

<고통만이 인간을 성숙시킨다.>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큰 도움이 되는건 확실하다고 보긴 합니다.

자연스럽게 우리아이들에게 여러 시련을 겪지 않도록 하고 있는데, 요즘 가끔 일부러 좀 힘들게 해주고 극복하게 해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있습니다.


해보니까 별거 아니네??

이런 마음을 깊숙히 새겨넣게 하고 싶은데.. 쉽진 않네요~ ^^;;

저도 포스팅 올리고 보니 과연 니체가 고통’만’이 성숙시킨다고 했는지 아리송하네요.. 고통’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ㅎㅎ

안전한 상황에서(사실 안전한 상황이지만 아이들은 그걸 모르는)극복하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이들한테 좋을 것 같은데 부모로서 안전하게 보호만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큰거 같아요..><

두려움을 떨쳐버리겠다는 의지마저도
두렵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한번 나약해지면 다시 강해지기가 정말 어려운 것을 압니다.
나름 '쿨'하다고, '쿨'해졌다고 해도
어느 순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두려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봐요.
이미 몸에 체득된 두려움은 산화되어 없어지는 것이 참 힘든 일....

두려움을 극복하고 점점 강해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좋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
고통을 견뎌낸,
그래서 무심하게 흘러가버린 시간을 돌아보면
또 허무해집니다.ㅠㅠ

그래도 앞으로 올 시간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으려면
웃어야겠죠?!!?!^^

두려움을 이용해서 조종하는건 하지 말아야 할 행동 같습니다.
특히 아이에게는요...
두려움이 아닌 기쁨을 이용해서 원하는 바를 이끌어 나가는게 가장 좋을것 같습니다.

두려움을 이용해서 조종하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악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이 들어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