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악당들 : <대부>-돈 비토 꼴레오네(3) - 돈 꼴레오네의 '협상의 '룰''

in #kr7 years ago (edited)

내가 사랑한 악당들 1 : <대부>-돈 비토 꼴레오네(3)

  • 오늘의 씬 : 대부(The Godfather, 1972)
  • 감독 :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본 내용은 3부작으로 나뉘어 연재 됩니다.
    *본 내용은 같은 영화의 여러 장면을 소개할 수 있습니다.
    *전편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3. 협상의 ‘룰’


단단한 나무는 강한 바람을 만나면 결국 부러진다. 리더는 때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줄도 알아야 한다.

대부는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다 이내 역풍을 맞는다. 자기 조직원들이 살해당하고 자신도 저격당한다. 종래엔 후계자인 자신의 아들까지 잃게 되는데, 그는 전면적인 보복을 다짐하기 보단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편을 택한다.

어떤 전쟁에서든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차선책은 강한 힘으로 빠르게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모두 불가능하다면, 피해는 극심해진다. 전면전으로 양측 모두 폐허가 되어버린 이후에, 승리를 선언한들 무슨 이로움이 있는가? 상황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지 않다면, 적절한 타협을 선언할 줄도 알아야한다.

그러나 대부는 상대에게 굽히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잃지 않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훗날을 도모한다.


#4


1.jpg

(중략)“난 꼴레오네씨의 확답을 받고 싶소. 그의 지위가 강해지면 복수를 시도하지 않겠소?”


마약 사업을 반대하는 꼴레오네 패밀리는 타 패밀리의 습격을 받고, 이 때문에 얼마간의 분쟁이 일어난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마침내 대부는 마약 사업을 시작하려는 타 패밀리를 온전히 억제하는데 실패하지만, 협의를 통해 제약을 걸어두는 데는 성공한다.

하지만 대부의 아들을 죽인 타탈리아 패밀리의 보스 타탈리아는 언젠가 꼴레오네 패밀리가 보복해올 것을 염려한다.


2.jpg

“복수라고? 복수가 당신 아들을 살려내겠소?”


3.jpg

“내 아들도? 나는 내 아들의 복수는 포기하오.”


대부는 지난 과거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것으로 한 발 물러선다. 그러나 그것은 굴종의 의미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용서다. 여기서 전면전이 선언된다면, 타탈리아 패밀리는 괴멸할 것이다. 그러나 꼴레오네 패밀리도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가령 아들의 죽음처럼 말이다. 물질적인 부분은 복구하면 그만이지만, 사람의 목숨과 같은 것은 되돌릴 수 없으니까.


4.jpg

“하지만 소망이 있소. 내 막내아들은 미국 밖에 있소. 솔로조 때문이지....... 난 그 애가 안전하게 미국으로 돌아오기 바라오. (중략) 만일 그 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고 용서하지 않겠소.”


허나 대부의 용서는 단지 용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가 용서한 만큼, 그가 물러선 만큼 줄어든 파장에 대해서, 응당한 대가를 요구한다. 막내 아들의 신변 안전을 요청하면서 대부는 한 발짝의 물러섬도 없는 의지를 내비친다. 이는 요청이라기보다 차라리 경고에 가까워 보인다.

강한 힘으로 상대를 짓누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수에게 화해의 악수를 건네기란 어려운 일이다. 보통은 반대의 경우가 더 흔하디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는 복수를 포기한 ‘대가’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로써 그의 용서는 체념보다는 관용의 성격이 더 짙어지고, 이후의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하게 된다.

이렇게 대부는 자신의 패밀리가 다른 패밀리들을 힘으로 압도할 수 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 주체인 타탈리아 패밀리에게 더 큰 부담감을 안겨준다. 모든 패밀리들이 증인으로 있는 가운데 기습적으로 자신의 제안을 공론화 시키면서 이후 발생할 불상사에 대해 명분을 만들어내게 된다. 행여 또 다른 불화가 빚어져 꼴레오네 패밀리가 공격받더라도 신의가 우선시 되는 세계에서 어떤 패밀리든 함부로 가담할 수 없게 된다. 실로 한 팔을 내주었다면, 상대의 몸통을 가져오는 격이다.


5.jpg

“그건 그렇고....... 내 손자의 영혼을 걸고 맹세하겠소만, 오늘 여기서 맺는 평화를 깨뜨리지는 않겠소.”


대부는 다시금 복수를 포기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천명하고, 동시에 자신이 제안한 것에 대한 보장도 함께 얻는다.

이처럼 대부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가역성이 없는 결과에 대해서 다시 그를 캐묻고 파괴의 길을 걷기 보다는 그를 토대로 새로운 이익을 얻는 협상의 ‘룰’을 보여준다. 대부는 자신에게 복수의 명분이 있음에도 그것을 일회성으로 휘발시키지 않고 지속시켜 패밀리의 안전을 보장 받는 명분을 얻었다. 이는 단순히 수비적인 이점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상대는 공격할 명분이 없는데, 우리에겐 공격할 명분이 있다는 것은 큰 차이다.

꼴레오네 패밀리가 먼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이 지하세계에 큰 변동은 없다. 그것은 돈 꼴레오네가 가진 신념과도 부합하는 일이다. 지하세계는 자신에게 주어진 어둠의 영역을 고수하며 빛의 세계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 이 한 번의 협상으로 대부는 지하세계의 권력 구조에 변동을 낳지도 않았고 오히려 자신의 힘을 공고히 하게 된다.


6.jpg

화해의 포옹을 나누는 타탈리아와 돈 꼴레오네


그는 지하세계의 보스로서, 대부로서, 그는 어떤 참혹함이 있더라도 냉정하게 현실을 파악하고 조직에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을 선택했다. 잃은 것이 있지만 얻은 것도 있다. 지하세계의 ‘룰’을 지키기 위해 그 스스로는 포기할 줄도 알지만, 그렇다고 앞서 소개한 ‘의리의 룰’을 저버리지도 않는다.

내가 대부의 ‘룰’을 사랑하는 까닭은 그 신념을 지켜가는 일관성에 있다. 어떤 신념을 가지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지켜내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신념의 힘은 대단해 보인다. 대부는 자신이 고수하는 신념을 깨트리지 않는다. 설령 상황이나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일관성을 놓칠 위험이 있을 때는 자신을 희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부는 줄곧 그의 행적으로부터 신념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방법을 말해준다.

무리하게 하나의 신념을 고집하다가 끝끝내 파멸하는 것도 현명한 처사가 아니고, 신념을 버리고 간신배처럼 우왕좌왕하는 것도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하나의 신념을 정했으면, 그 신념이 끝끝내 추구하는 큰 그림에 맞춰 작은 부분을 조금씩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각자가 지닌 신념을 완전히 놓아버리지만 않으면 된다.

적어도 죽기로 다짐한 것이 아니라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살아서 인생이라는 긴 종주를 살아내는 것이다. 누구든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고, 자신이 정한 ‘룰’이 무기력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품은 가치나 이상들을 현실에 타협한다는 이유로 억지로 걷어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부는 때에 따라 적절히 발을 빼는 것도, 또 그 일보 후퇴를 발판으로 더 큰 도약을 할 수도 있음을 ‘협상의 룰’로 보여준다.

그러니 우리의 신념이 공격받았다고 해서 복수의 칼날을 세우거나 좌절에 빠질 필요는 없다. 어차피 일어난 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래에 남겨놓는 것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래에 남겨놓는 것이 더 좋은 일이 아닐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결국 그 미래의 상황 속에 남겨지게 될 것은 어쨌거나 ‘나’이니까.


Sort:  

잘 읽었습니다, 멋진 평론! 팔로우하고 보팅하고 리스팀합니다! 굿 럭!

저도 시간내어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신념마저도 유연함이 있어야 지킬 수 있는 것이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맞팔 부탁 드려요~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
시간내어 찾아뵙겠습니다!

대부는 정말 늘 봐도봐오 명작인게 분명합니다
ㅎㅎ 인사드리고 갈게요! 댓글과 맞팔은 저희 부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감사합니다 :)
시간내어 방문하겠습니다!

대부는 아마 가장 재미있게 본 3부작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다시 이렇게 공들이신 글로 읽으니 마치 좋은 주석이 달린 소설을 보는 듯 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아직 대부는 전편을 보지 못해서 감상이 끝나게되면 대부 시리즈 전체에 대한 감상도 남겨보고 싶군요!

3편에 걸친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너무 사랑해서 다섯 번 본 영화인데 이렇게 쓰신 글 보니 또 새롭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역시 악당을 너무 미화한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참 좋아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주말의 영화에서 처음 대부를 접해서 그런지, 말론 브란도의 돈 꼴레오네보다 배우이자 성우인 장광씨의 돈 꼴레오네가 더 친숙하고 좋습니다. 더빙본으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대부의 대사는
"마이클, 남자는 방심하면 안 돼"
입니다.

정작 저는 수많은 방심 속에서 살아 왔지만서도.

말씀해주신 것처럼 악업을 미화하는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에 대부는 특히 캐릭터에 집중하는 글을 썼습니다 :) 대부의 신념이 주목할만한 것이기는 해도 그의 신념은 결국 악행을 일으키기 위함이니까요.

장광씨가 돈꼴레오네의 성우를 맡았었다니 새롭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저도 더빙본을 듣고 싶군요!

그리고 저도 그 대사를 좋아하는데, 특별한 철학이라기 보단 그저 남자의 로망(?)같은 느낌입니다

!!! 힘찬 하루 보내요!

누군가를 용서하는게 쉽지 않습니다. 저 또한 저에게 사소한 잘못을 한 사람을 진심으로 용서하기가 쉽지 않으니.... 아들을 잃은 돈 꼴레오네의 심정이 어떨지 감히 짐작하지 못하겠어요 ㅠㅠ 하지만 남은 아들과 다른 패밀리를 위해 거국적인 결정을 내린 돈 꼴레오네의 그릇이 매우 크다는걸 다시한번 깨닫게 됩니다. 저는 언제쯤 그의 그릇의 크기를 따라할 수 있을까요... :)

용서란 내면에 용서로 인해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만한 그릇이 있을 때 가능한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그만한 그릇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

미미하나마 마지막 글에라도 보팅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