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업에 몸을 바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일까 - 중쇄를 찍자(2016)를 통해 깨달은 가치
안녕하세요, 스티미언 여러분 =) 오랜만입니다.
2019년의 마지막 글은 저번 글인줄 알았는데, 일곱 편의 작품을 쓰고나니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슬럼프에 빠져 드라마를 보고 후기를 적어보았습니다. 모쪼록 따뜻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
기업에 몸을 바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일까
중쇄를 찍자(2016)를 통해 깨달은 가치
written by @hyunyoa
열심히 하면 바보로 취급받는 시대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금수저의 영향으로 노력은 불필요하다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이젠 열심히 해도 안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친한 지인들에게도 열심히 하자 말하기 주저스럽다. 무작정 애를 쓰는 것보다는 자신만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래서인지 일본 드라마 중쇄를 찍자(2016)의 코이즈미(사카구치 켄타로)를 보며 눈물이 났다.
출판사의 영업팀 사원 코이즈미는 삼 년간 영업일을 하고 있지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어떤 실적도 내지 못한다. 그는 성과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한 번 거절당하면 그러려니 수긍하고 돌아서고, 회의 때도 조용하다. 별 의욕이 없어 보이는 그이기에 누구도 코이즈미를 찾지 않는다. 그는 그 사실에도 괘념치 않는듯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이 팀에 오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속한 영업팀은 그저, 편집팀을 위해 거쳐가는 관문일 뿐이니까 하면서.
그런 코이즈미에게도 하나의 시련이 왔으니, 바로 코코로(쿠로키 하루)다. 그녀는 신입사원이라 하면 누가 봐도 코코로를 짚을 것만 같을 정도의 열정을 보이는 사람이다. 언제고 두 주먹을 불끈불끈 쥐면서 '힘내자!'라고, '열심히 하자!'라고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처음 코이즈미는 이곳저곳을 두드려보는 코코로에게 '저렇게 해서 무슨 소용인가'라는 눈길을 보내지만, 예상외로 그 두드림이 보답받는 순간을 지켜보며 가장 먼저 뭉클함을 느낀다.
나는 작년 초, 광고 회사의 인턴이었다. 그토록 바라 왔던 회사생활이었으므로 정말 불철주야 힘썼다. 야근 수당을 받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머리와 몸을 굴렸고, 자진해 이것저것 찜하며 업무를 늘렸다. 일을 다 하면 다른 팀을 기웃거리며 더 주실 일이 있냐고 묻기도 할 정도였으니 내 평판은 극호와 극불호로 나뉘었다. 물론 후자가 더 많았다.
당연한 사실이었다. 최저 임금을 받으면서 자신보다도 더 많은 일을 하는 후임을 싫어하는 상사도 있었고, 동기들도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는 듯했다. 물론 그럼에도 포기는 내 몫이었지만 나는 결국 성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쟤는 이만큼의 일도 몇 시간 내에 할 수 있다는 편견이 굳어지자 과도한 업무에 나가떨어지고 만 것이다.
이후 효율을 배우게 된 나는 몸이 편해졌다. 하루 어치의 업무를 다 했더라도 제출 시간까지 딴청을 피우다 마감 시간에 제출했다. 전과 달리 퇴근 후에는 취미를 만들 여유가 생겼으며, 워라밸을 만들며 사적인 시간을 넓혔다. 일은 딱 내가 돈을 받은 만큼만 하자는 마음으로 대하니 성과에 급급하던 욕심도 줄었다. 내가 열심히 하더라도 아무도 몰라줄 테고, 내가 한껏 재주를 부려도 결국 공은 기업이 가져간다고 믿으니 출근하면서도 퇴근시간을 셌다. 즉, 나는 한 달 만에 코코로에서 코이즈미로 탈바꿈했다.
코코로는 대단하다. 적어도, 그녀의 세상에 한계는 없다. 혹여 거절이나 무시를 당하더라도 쿨하게 툭툭 털고 일어난다. 벽에 부딪혀 아플 때도 많지만 그날 엉엉 울면 그만이다. 다음날에는 실패에서 경험을 배우니까. 진정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이다. 인상 깊은 장면이 많았지만, 그중 하나는 노인 만화가 얘기였다. 코코로가 몸담은 잡지사는 연령대가 맞지 않기에, 코코로는 그에게 노년층을 겨냥한 잡지사를 찾아가 보라며 리스트를 건넨다. 그 열정은, 인류에 대한 사랑과 성실함이 맞닿아 최강의 시너지를 발휘한다.
배를 만들게 하고 싶으면 나무판자를 쥐어주는 게 아닌, 즉시 손을 잡고 바다로 데려가 바다에 대한 동경을 심게 하라는 말이 있다. 그녀의 반짝거리는 열정은 동료들에게도 서서히 퍼져 나간다. 궁금하면 부끄러워 않고 질문하는 행동, 답을 가진 이를 존경하며 스쳐 지나가는 조언이더래도 손으로 꾹꾹 적으며 외우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저 침대 속에서 드라마를 보는 나마저도 에너지가 생긴다. 일을 하고픈 마음에 자소서를 쓰고 싶을 정도다.
코이즈미는 광활한 바다의 동경을 마음속에 심고, 코코로처럼 열정적으로 손을 내밀기 시작한다. 유령이라 불렸던 그지만 과감하게 의견을 피력해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통하기 시작한다. 동료들은 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인다. 용기를 내 발 벗고 뛰는 덕분에 책은 중쇄까지 찍는 성과를 이룬다.
심지어 그가 미는 책이 지하철 안까지 걸리자, 그는 드디어 자신의 일을 인정한다. 그간 자신이 무시했던 영업의 묘미를 깨닫는다. 일에서의 권태기란 그런 것 아닐까. 이걸 열심히 해봤자 별 다를 효과가 없을 것만 같은 무기력함에서 출발하는 감정. 원하지 않던 팀으로 배치되었을 때 얼른 이 시련을 버티겠다는 마음. 직장 생활을 2년도 해보지 않은 뜨내기일 뿐이지만 이후 슬럼프와 무기력에 빠져 허덕일 미래의 나를 위해, 그리고 혹시 지금 노잼 시기를 겪는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스팀잇을 열었다.
우리는 어쩌면 직장 이후의 삶, 그러니까 퇴사만을 이상적이게 여기고 그 시간만을 좇으려는 건 아닐까. '중쇄를 찍자!'를 보며 그런 물음이 들었다. 혹시, 나. 하기 싫은 일을 넘기려는 마음에 그 일을 하는 지금의 나도 잠시 멈춰있다고 여겼던 건 아니었나. 동화 작가가 되고 싶지만 취준생이 되어버린 나를 한심하게 여기고, 생각지도 못한 팀에 들어간 나를 그저 흘려보내려는 생각으로. 일을 열심히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마음과 더불어.
물론 사생활을 포기하면서 일에 올인하는 건 전혀 좋지 않다. '중쇄를 찍자!'의 한 상사는 과거, 일을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며 공휴일에도 자진해 일을 하느라 아내에게 이혼 서류를 받기도 했으니. 가장 어렵지만, 일로 인해 사람을 잃지 않도록 중간을 지켜야 할 테다. 그럼에도 용기 내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기업에 몸을 바치는 이를 함부로 손가락질하지는 않아야겠다는 다짐에서 출발했다.
내 모든 피와 땀을 쏟아봤자 결국 기업만 성장한다고 여겼다. 그러니 내 시간을 기업의 자본과 교환한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일이 싫어졌다. 얼른 퇴사가 하고 싶어졌다. 기업의 성장을 내 성장으로 동일시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일로 인해 삶의 경험과 가치관을 세울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떤 면이든 '한계에 겁먹지 않고 부딪히는 사람'이 되어, 다시 한번 열심히 살아보려 한다.
열심히 해봤자 무모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조금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열심히 할 테다. 코코로에서 코이즈미로 변하고 다시 코코로로 돌아왔듯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시선에 한 발짝 더 다가간 기분이다.
기업에 몸을 바치는 일은 바보 같지 않다. 한 분야에서 열정을 뽐내는 것, 그게 자신이 맡은 일에서 출발했다는 과정이 모두 대단하니까. 멋진 사람들이니까.
이력서를 연다. 더 멋진 사람으로 입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lucky2님이 hyunyoa님의 이 포스팅에 따봉(7 SCT)을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요아님 글 읽네요.
잘 지내고 계신듯 하여 좋으네요.
일 잘하고 씩씩한 사람을 보면 긍정의 에너지를 얻어요. ㅎㅎ
도잠님! 이렇게나 빠르게 읽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더 튼튼하게 하루를 맞이하는 중입니다 =)
긍정의 에너지를 마구 발산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도잠님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 가득한! 따스한 연말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요아님도 편안하고 재미나고 충전하는 연말 맞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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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입사 성공하시길 빕니다~~
마음속으로 의욕이 더 생겨나게 하는 글이네요.
저도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좋아하게 된다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글에 적으신 것처럼 사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일에 헌신하는 것이 아닌,
내 일
을 한다는 생각으로 일한다면 정말 멋질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