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PEN클럽 공모전 심사 후기] 축제의 옷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78마디 (1/2)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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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후에

 자그마치 78개 삶의 기록과 대면해야 했다.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이언맨 수트에 맞먹는 정신의 수트를 걸치고 78개의 글이 난무하는 치열한 삶의 기록 속으로 들어갔다. 일기라고 가볍게 봤는데 제대로 무장한 글들이 달려들었다. 유려한 문장에 난사 당하고, 아찔한 체험에 뒤통수를 맞고, 감동 유발하는 스토리에 마음이 흐물흐물해졌다. 78개의 모든 글 밖으로 나왔을 땐 수트가 다 망가졌다.

 심사하는 이틀 동안은, 닥터 스트레인지급 마인드 히터에게 사로잡힌 듯, 내 일상에 집중할 수 없었다. 78개의 글이 내 안에 뿌린 씨앗들이 끊임없이 피고 졌다. 어쨌든 78개의 무시무시한 글들에 78개의 숫자를 달았으니 내 임무는 끝이 났다. 이제 수트를 벗고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건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도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

 전쟁의 상흔으로 괴로워하던 퇴역 군인이 다시금 전쟁터를 그리워하는 영화 속 이야기는, 이틀간의 심사 기간을 거친 후의 내 상태를 말해주는 가장 비슷한 은유였다. 난 78개의 글에 숫자를 달아야 하는 괴로움을 당한 끝에, 그 일기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78호가 있는 마을에 들어가 임무 수행을 끝내고 난 후에, 스스로 그 마을로 다시 돌아갔다. 이번엔 숫자가 아닌, 한 마디의 말을 건네기 위해서.

 그들의 기대와 바람이 이루어졌든, 사위어졌든, 삶으로 낳은 이야기에 감상 한 줄씩은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읽기 시작했다. 심사를 위해 읽었던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업무량이 많은 주간, 틈틈이 일기의 반 정도를 다시 읽었다.


78개의 기록에 건네는 한 마디(1~40번 일기)

  1. 조금은 낯선 일기 / @actapeta
     “흐름 없는 흐름, 번호 없는 번호 일기.”

  2. 내 나름의 마감치던 날 / @kyunga
     “글을 간절하게 붙잡고 늘어지는 일상에 공감 별풍선을.”

  3. 쳇바퀴속의 일기 / @minhoo
     “하고 싶은 것은 많고 돈과 시간은 부족하도다. 열정남의 노래.”

  4. 아버지 기일 / @banguri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친척들, 그 애정의 세월과 함께 찾아온 페이소스”

  5. 한번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기억 / @stylegold
     “아버지의 장례와 딸의 탄생이 중첩된 날의 복잡한 심경을 감각적인 구성으로.”

  6. 스팀잇은 기억 소환기 / @sadmt
     “포스팅의 압박은 기억의 케첩을 짜낸다.”

  7. 터널 끝에서 만난 남자 / @thelump
     “일상의 기록이 위트를 만나면 전기톱을 든 남자보다 위험하다.”

  8. 모든 순간은 배움의 연속이다 / @aruka
     “인종차별도 성장의 에너지로 삼는, 소녀 파월!”

  9. 셋째 아이와의 만남 / @hee4552
     “희소성은 가치의 척도. 예외가 있다. 세계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지만 더없이 가치 있는 일, 출산. 그 아름다운 기록”

  10. 2018년 4월 27일 / @thewriting
     “조카 ‘기쁨’이도 피해갈 수 없는, ‘울음’의 세계. 울음으로 꿴 존재에 대한 단상.”

  11.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길 / @realsunny
     “오늘 하루 어땠어? 관계 회복을 부르는 평범한 말. 담담히 적어내린 문장이 주는 울림. 평범한 말들이 주는 치유.”

  12. 버번 위스키, 돼지 불판 볶음밥, 그리고 한국 / @menerva
     “한국인 뉴요커의 꿈은, 위스키와 돼지불판 볶음밥을 먹고 자란다.”

  13. 봄날의 일기, 좋아해요 / @solnamu
     “턱 막히는 느낌이라고 앓는 소리 후에, 할 말 다 하는 번호 일기. 소파에서 쓴 듯 편안해서 누워 읽고 싶은.”

  14. 햇살 좋은날 / @hsuhouse0907
     “이 글을 요약하면, 딸아 아빠는 아빠의 아빠가 그리워. 속정 깊은 남자가 글에서 보인다.”

  15. 어른의 정의 / @pistol4747
     “난 무슨 색의 어른이 될까를 고민하는 남자의 기록. 회색이 싫다면, 잿빛은 어때요?”

  16. 모쪼록 사랑하기 좋았던 날.. / @choim
     “현재진행형인 연애담을 일기로 쓰는 그에겐, 상이 필요 없다.”

  17. 첫째날 –두려움 / @raah
     “불현 듯 ‘늙음’을 느낄 때를 기록함. 모든 늙어가는 남자에게 묘한 위안이 되는.”

  18.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기저귀화 '성큼' / @finlandinmyears
     “아들의 배변 훈련의 성공을 핵 폐기 기사로 패러디한 수준급의 유머를 보라. 이 글만큼은 폐기되지 않은 핵폭탄이다.”

  19. 기다림에 대하여 / @lachouette
     “설레는 기다림은 연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딸을 만나러가는 어머니의 심장도 뛴다.”

  20. 봄비가 내렸다, 그리고 / @thinky
     “‘짜증’까지 승화시키는 일기의 힘. 야속한 봄비에게 화해를 청한다.”

  21. 아버지와 돈가스 그리고 명동 / @dmoons.kim
     “사후를 더듬어보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먹먹함. 아버지가 남길 조각들을 더듬더듬 찾아보고 싶은.”

  22. 절대 뒤돌아보지 않을 거야 / @roundyround
     “옷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묻어 있다. 빨래에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들. 아무한테나 보이는 건 아니다.”

  23. 나는 살아왔다. 그 속에 진짜 '나' 는 존재했을까 / @ghdcks10
     “다시 주먹 쥐고 일어나. 나로 살아가기로 한다. 몇 번째 다짐일까.”

  24. 벚꽃이 떨어지는 날, 추억도 함께 떨어지다 / @peanut131
     “누구나 한 번씩은 기억의 방 하나에 살고 있는 그녀를 불러낸다.”

  25. 필사하는 밤 / @levoyant
     “소설의 한 장면과 일상을 기워냈다. 근데, 바느질 자국이 없다!”

  26. 아빠의 스물두 번의 환생 / @twohs
     “여름날의 따뜻한 우화를 만들어낸 가족. 점의 개수가 환생의 수라고? 점 빼러 피부과에는 못 갈 가족.”

  27. 어느새 난 일기를 쓰고 있었다 / @kimsungtee
     “일기가 안 써진다는 외침이 일기가 된 글. 공복을 채우려면 ‘굶주림’을 먹읍시다.”

  28. 시에 대한 나의 태도 / @sirin418
     “‘그 분’이 손끝에 기름칠을 해주시면, 시가 술술. 그 분이 오시면 시가 뭐 별 건가.”

  29. 강낭콩을 심었다 / @songvely
     “강낭콩과 아이는 기다려야 자란단다. 쉿, 기다려도 싹이 안 트는 강낭콩이 있다는 건 비밀.”

  30. What is Love? 나에게 사랑이란? / @rokyupjung
     “트와이스의 노래를 통해 생각해본 나의 사랑관. 시련의 물감으로 채색한 사랑의 색.”

  31. 끄적끄적 밀린 일기 / @energizer000
     “실패도, 부족함도, 그녀의 손을 거치면 유쾌한 기록이 된다. 앞태는 몰라도, 뒤태만큼은 빵빵한 엉덩이 같은 글.”

  32. 봄사월 이십팔일 / @maanya
     “길을 걷는 건지, 너를 보는 건지. 함께 걸어 좋은 건지, 함께 걷는 게 불만인 건지. 도통 모를 나의 맘.”

  33. 무명의 속옷 가게 앞에서 / @garden.park
     “속 옷 가게의 현수막에서 시작하여, 박인환의 시와 잡지의 표지 그리고 ‘나’를 솜씨 좋게 줄 세운다. 알고 보니 모두 한‘통속’!”

  34. 스팀잇 과거 일기 – 나의 글 / @asinayo
     “일기 형식 변화의 과정을 기록하다. 독자를 배려하는 글쓰기, 일기도 예외가 아니다.”

  35. 왕초일기 – 불행 뒤에 찾아오는 행복 / @happylazar
     “방콕의 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하여 환전하고 카페에 들른 이야기. 혼자 간 여행은 단조로워도 즐겁다.”

  36. 메이커 스페이스 꼭 하고싶어요 / @urobotics
     “그물을 넣기만 하면 물고기를 건질 것 같은데… 그물을 빌릴 수가 없네.”

  37. 숯불 양념돼지갈비와 행복 / @sobbabi
     “육아가 시작되며 사라진 행복, 숯불 양념돼지 갈비가 찾아드립니다. 아이는 잠시 넣어둬~ 넣어둬~”

  38. 진정한 초딩일기 / @mylifeinseoul
     “일상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흐른 물도 결국 바다에 다다른다.”

  39. 아내가 출산하던 날 / @zaedol
     “잃어버리기 싫은 것일수록 잃어버리는 나쁜 상상은 더 생생하다. 상상의 끝엔 기쁨이.”

  40. 2인분이 되고 싶다 / @piggypet
     “2인분의 몫을 하게 만든 건, 격려. 격려가 필요 없는 일은 2인분의 양을 먹는 것.”


P.S.

 나머지 일기들(41~78번 일기)은 틈나는 대로 다시 읽고 한 마디씩을 달려고 합니다. 심사를 하며 팔로우가 안 되어 있던 이웃은 전부 팔로우를 했습니다. 혹시 안 된 분은 까먹고 넘어간 경우입니다. 새로운 글 이웃들이 생겨서 기쁩니다. 일기 다시 읽고 문장을 쓰느라, 이웃들의 피드를 살피지 못했어요. 이번 주까지만 일기에 파묻혀 지내려 합니다. ;;;

 삼주동안 준비해서 오늘 끝낸 운동회. 운동회 담당자인 나에게 남은 건, 온 몸에 묻은 운동장 먼지들. 그마저도 물로 씻어내버렸습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 이리 좋네요.

 우리 아이들 아직 어린이가 아니지만, 내일 어린이날 기분을 만끽하러 떠납니다. 내일, 어린이를 기쁘게 하든, 어린이가 되어 놀든, 둘 중에 하나는 이루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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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개의 기록에 남기는 한 마디를 읽는동안 마음이 참 따뜻해졌어요^^ 행복한 어린이날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신에게는 38개의 문장이 남았습니다ㅋ 보얀님도 어린이처럼 즐기셨나요. 1위 수상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ㅎㅎ

제가 참여해서 시간을 낭비하게 한 건 아닐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후기를 남겨주셨네요!
운동회 잘 마치셨군요
오늘 바람이 심하던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시간 낭비라니요!ㅎ 삶이 담긴 모든 글에 경외감이 들었습니다.
오늘 날씨가 좋아 운동회 잘 치루었습니다.^^

와.... 대단하십니다.
한분 한분에 대한 배려가 깊으십니다.
좀 쉬셔도 될것 같습니다.

일기 써서 응모하신 분들의 열정과 정성이 대단했습니다.
뭐라도 드리고 싶은데 드릴 건 딱히 없고, 말이라도 한 마디합니다.^^

감상평 감사합니다. 저도 잘 보낼테니, 카일님도 어린이 날 잘 보내시길.

시린님 감사합니다. 제가 카일님은 아니지만, 저한테 주신 인사인 거 압니다.ㅎㅎ
즐거운 연휴 되세요! ^^

헐.. 제가 영어를 잘 못하나봐요. ㅠㅠ

ㅋㅋ 소울메이트나 쏠메로 불린답니다. 카일님은 따로 있더라구요.ㅎㅎ 시적 영감이 팍팍 떠오르시길!

와.. 한마디 한마디가 각글들을 더 읽고 싶게 만드네요.. 조용히 넘어가 보렵니다.

전시된 글들 구경 가보세요.ㅎㅎ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한줄평도 감동이구요. 좋은 알기 많이 남길 의지가 생기네요 😊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다음 실습때는 3인분 몫을 하시게 되는 건가요.ㅎㅎ

진짜로 제가 세명이 되어서 일을 분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긴 하네요 ㅋㅋㅋ

좋은 글로 제 일기를 평해져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편한한 밤 되시고 주말 잘쉬시길 바랍니다

정성스러운 일기에 뭐라도 남겨야겠기에 감상을 남겼습니다.ㅎ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

감동입니다.. 두세번 읽지 않았다면 요약할 수 없는 문장들이 정성스럽게 나열되어 있네요. 제가 읽었던 다른 분들의 일기도 절로 연상이 되네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상을 더 주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쟁쟁한 작품들 속에서 수상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ㅎ

심사하는 일이 보통일이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네 보통 일이 아닌 걸 더 깊이 느꼈지요. 좋은 글들 많이 볼 수 있었다는 보람도 컸어요.^^

한분한분에 대한 마음이 느껴지니 모두다 감사해할것 같군요 ~ ^^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

마음이 느껴진다면 다행입니다.ㅎㅎ 멋진 글들에 대한 저의 작은 박수일 뿐입니다. 좋은 연휴 되세요.^^